치매가 발생하는 원인이 매우 다양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알츠하이머다. 전체 치매 환자의 50~60% 정도가 알츠하이머에 의한 것이다.
알려져 있는 것처럼 알츠하이머는 건강한 뇌세포의 일부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타우 단백질과 같은 단백질이 미세한 덩어리로 서로 달라붙기 시작하면서 뇌 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퇴행성 신경 질환이다.
이런 단백질 덩어리를 응집체(aggregates)라고 하는데 환자의 뇌 속에 형성돼 뇌세포를 죽이고 기억상실과 같은 증상을 유발한다. 응집체가 늘어나면 증상도 더 악화되는데, 많은 경우 첫 번째 증상이 나타난 이후 수년 후에 사망에 이르게 된다.
동물 대신 인적 데이터로 진행 과정 파악에 성공
치매 환자 수가 계속 늘고 있는 가운데 과학자들이 밝혀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이 응집체가 형성되는 과정이다.
여러 가지 유형의 프로세스가 응집체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 있지만 아직 응집체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이 응집체가 형성되는 속도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지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알츠하이머 연구에 서광이 비치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팀은 29일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 지에 알츠하이머 원인 규명과 관련된 논문을 게재했다. 제목은 ‘In vivo rate-determining steps of tau seed accumulation in Alzheimer’s disease‘.
연구에 참여한 게오르크 마이슬(Georg Meisl) 연구원은 31일 ‘더 컨버세이션’ 지를 통해 “그동안 알츠하이머 연구는 쥐와 같은 동물을 통해 진행돼왔지만 훌륭한 모델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람에게서 알츠하이머가 발병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리지만, 쥐와 같은 실험실 동물들은 훨씬 더 짧은 기간에 발병해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시작서부터 마지막까지 여러 면에서 사람과 대비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것.
이런 상황 속에서 마이슬 박사 연구팀은 동물이 아닌 인간 데이터를 통해 알츠하이머 진행 과정을 파악하기 시작했으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사람으로부터의 데이터가 실험동물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제한적인데다 동물 실험 결과는 수정할 수 있지만, 사람은 그런 과정이 불가능했으며,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종류의 인적 데이터를 결합하고 분석하는 수학적 모델도 없었다는 것.
연구팀은 그러나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분자가 상호 작용하는 방식과 속도를 관찰할 수 있 화학동역학(chemical kinetics)을 통해 뇌 안의 미시적 수준에서 발생하고 있는 알츠하이머 증상을 알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 원인 규명에 서광… 치료법 개발 가능성
마이슬 박사는 이 연구 과정을 표백제에 비유하고 있다. 얼룩진 옷에 표백제를 바르면 얼룩이 사라지는데 화학동역학을 통해 표백제가 얼룩(유색 분자)을 어떻게 분해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는 것.
알츠하이머의 경우 표백제보다 훨씬 더 복잡하지만, 유사한 아이디어를 적용해 뇌 안에서 알츠하이머 응집체가 형성되는 방식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 환자에 화학동역학이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를 PET(양전자 방사 단층 촬영법)로 스캔했으며, 질병으로 사망한 환자의 뇌 현미경 검사 등을 실시해 동물이 아닌 사람으로부터 알츠하이머와 관련된 데이터를 산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를 통해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사실도 밝혀졌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단백질 응집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하고 있었는데 하나의 응집체가 일정 기간 후에 2개의 응집체를 생성하고, 동일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4개의 응집체를 생성하는 식으로 증식할 때마다 매번 배가된다는 것.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기하급수적으로 증상이 확대되고 있을 때 처음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보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갑자기 폭증하는 것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알츠하이머 증상 역시 처음에는 가볍게 나타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갑자기 악화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번 연구에서 밝혀진 새롭고 고무적인 사실은 인간의 뇌가 응집체의 증식을 늦추는 데 상당히 능숙하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 응집체 양이 두 배로 늘어나는데 약 5년이 걸렸는데 이는 동물 실험 결과보다 10배 이상 오래 걸렸다. 사람 뇌 안에 응집의 여러 단계를 늦추는 많은 요인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 하나 밝혀진 새로운 사실은 응집체가 뇌의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알츠하이머 진행 속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초기 응집체의 위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진행 속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함에 따라 연구팀은 증상 악화의 주요 요인은 개별 뇌 영역에서의 응집체 증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알츠하이머를 치료하는데 확산 가능성이 있는 영역을 차단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응집체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개별 영역에서 응집체의 증식을 차단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환자들에게 건강한 삶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마이슬 박사는 “사람 뇌 안에는 응집의 여러 단계를 늦추는 많은 요인들이 있었는데 향후 후속 연구를 통해 치료법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세부적인 요인들을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알츠하이머 증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4,4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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